티스토리 뷰
목차
솔로몬은 고대 이스라엘의 제3대 왕으로, 다윗의 아들이며, 약 기원전 970년에서 931년 사이에 왕위에 있었습니다. 솔로몬은 선지자 나단의 예언에 따라 다윗 왕의 후게자로 선출되었으며, 그의 통치는 이스라엘의 역사에서 가장 번영한 시기였습니다. 솔로몬은 지혜롭고 지적인 인물로 유명했으며, 그는 '솔로몬의 지혜'라는 표현으로 널리 알려져 있습니다. 그는 이스라엘의 성전을 건설하고, 상업적인 거래와 외교 관계를 확대하여 국가의 부와 영향력을 증대시켰습니다. 그러나 그의 통치 후반기에는 지나친 세제와 거대한 성전 건설로 인한 경제적 압박으로 인해 국가의 안전성이 떨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목차
솔로몬의 지혜 이야기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줄거리


솔로몬의 지혜 이야기
1. 지혜로운 판단력 : 솔로몬은 매우 현명한 판단력을 가졌습니다. 그의 판단력으로 유명한 일 중 하나는, 두 명의 여인이 아이를 놓고 자신의 아이라고 다투었을 때 솔로몬은 아이를 반으로 갈라 서로 나누어 가져가게 하라고 하자 솔로몬 왕에게 죽이지 말아 달라 애원하는 여인을 가려 친어머니를 가려 진짜 아이의 어머니가 누구인지 판단한 사건입니다.
2. 지식과 교양 : 솔로몬은 다양한 지식과 교양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문학, 예술, 과학, 건축 등 다양한 분야에서 지식을 쌓았으며, 이러한 지식을 바탕으로 솔로몬 왕의 통치하던 시대는 매우 번영하였습니다.
3. 지적 교감 : 솔로몬은 다른 지적인 인물들과 교류하며 자신의 지식과 경험을 공유하고 토론하였습니다. 이러한 교감은 솔로몬의 학문적인 발전과 국가발전에 큰 기여를 하였습니다.
4. 예속과 선견지명 : 솔로몬은 예속과 선견지명의 능력으로 미래를 예측하고 예방할 수 있는 능력을 가졌습니다. 이러한 능력으로 솔로몬은 외교적인 문제나 국내적인 문제를 미리 예측하여 대처할 수 있었습니다.
5. 윤리적인 지혜 : 솔로몬은 윤리적인 지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다양한 윤리적인 문제를 직면하면서도 항상 옳은 선택을 하려고 노력하였습니다. 예를 들어, 그는 세금을 인상하기 전에 국민들의 의견을 먼저 수렴한 뒤 결정하였습니다.
6. 인간관계와 대인관계의 지혜 : 솔로몬은 인간관계와 대인관계에 대한 지혜를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상대방의 입장을 이해하고 존중하며, 상대방과의 대화를 통해 소통하며 문제를 해결하려는 노력을 보였습니다.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 줄거리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이라는 영화를 보신분들 계신가요? 구약성경 열왕기상 10장 1절~13절에 나오는 내용을 각색해서 만든 영화입니다. 이스라엘 왕국 제3대 왕인 솔로몬에게 찾아온 이방 여인 시바로 인해 벌어지는 사건들을 그린 영화죠. 요약해 보면 솔로몬 왕이 이스라엘을 다스리고 있을 때, 먼 나라인 세바 여왕이 그의 명성에 대해 듣고 만나기 위해 이스라엘로 오게 됩니다. 그녀는 수많은 귀중품을 지참하여 솔로몬 왕의 궁전을 찾아가게 됩니다. 그녀는 솔로몬 왕에게 여러 가지 문제를 던지며 그의 학식과 지혜를 시험해 봅니다. 솔로몬 왕은 이에 대해 정확한 대답을 제공하며 그녀를 놀라게 합니다. 그리고 두 사람은 서로의 지혜를 칭찬하며 친근해집니다. 그리고 마친 내, 세바 여왕은 솔로몬 왕의 궁전과 성좌, 그리고 국가의 풍요로움과 조직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습니다. 그녀는 또한 솔로몬 왕이 섬기는 하나님의 경외심과 그의 국가의 평화적인 상황에도 놀라며, 이 모든 것이 그의 지혜와 지도력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을 깨닫습니다. 그리고 세바 여왕은 솔로몬 왕에게 대량의 선물을 내어주고, 두 사람은 서로의 나라의 문화에 대해 논의하며 서로의 관계를 강화하게 됩니다.
시바의 여왕은 역사학자들이 추정하기로는 이집트 출신이었으 것이라 합니다. 왜냐하면 당시 중동지역 국가 중 유일하게 유대왕국만이 유대교를 믿었고, 나머지 나라들은 모두 다신교를 믿었기 때문이죠. 그래서 많은 학자들은 고대 근동지방(현재의 터키)나 아프리카 북부 지역 등 다양한 곳에서 온 외국 여성이었다고 추측한다고 합니다. 솔로몬과 시바의 여왕이 만나게 된 계기는 당시 국제정세상으로는 서로 교류가 활발했기 때문에 충분히 일어날 수 있었던 일이라고 추측합니다. 특히 현재의 예맨 땅인 아라비아 반도 남부 지방은 홍해 연안 무역의 중심지였기 때문에 동서양간의 교역이 활발하게 이루어졌었죠. 이러한 배경 덕분에 여러 나라 상인들이 왕래했고, 자연스레 문화교류도 활발히 일어났을 것입니다. 이때쯤이면 이미 기독교가 전파가 되어있던 시기이기 때문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이후 로마제국으로부터 박해를 받던 유대인들에게도 복음이 전해지게 되었고, 이러 인해 수많은 유대인들이 해외로 이주하면서 자연스럽게 주변국과의 교류가 더욱 활발해졌겠죠?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