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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순신장군 학익진 거북선발명 명량대첩에 대해 알아보자

★※●★◎※●〓§▒ㅁ〓§▒◈◎ 2023. 3. 10. 11:54

목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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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오늘은 우리나라 역사상 가장 위대한 위인 중 한 명인 이순신 장군에 대해 소개해 드리려고 합니다. 임진왜란 당시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영중이자 바다에서는 거북선과 학익진 등 뛰어난 전술로 일본 해군을 물리친 명장입니다. 하지만 정작 자신은 전쟁 중 어머니께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고 상심하여 부하들을 제대로 지휘하지 못하고 전사하게 됩니다. 이후 선조는 이순신에게 죄를 물어 사형을 선고하지만 여러 신하들의 간청으로 인해 겨우 죽음만은 면하게 되고 백의종군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직책을 맡게 됩니다. 그리고 다시 삼도수군통제사로 임명되어 명량대첩에서 대승을 거부며 조선수군을 승리로 이끌게 됩니다. 그러나 노량해전에서 적의 총탄을 맞고 숨을 거두게 되는데요. 이 때 남긴 말이 유명한데 '나의 죽음을 적에게 알리지 말라'라는 명언이죠. 지금까지도 많은 사람들이 존경하는 인물이며 충무공이란 시호를 받게 됩니다.

     

     

     

    • 충무공이순신장군 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뭐가 있을까
    • 충무공은 어떻게 유명해졌나
    • 거북선은 누가 발명했나
    • 학익진은 어떤 전술인가
    • 명량대첩은 언제 일어났나

     

    충무공 이순신장군하면 떠오르는 단어는 뭐가 있을까

    가장 먼저 떠오르는 단어는 역시'거북선'이겠죠? 거북선은 판옥선 위에 덮개를 씌워 만든 배로 왜구의 침략으로부터 백성들을 보호하기 위해 만들어졌습니다. 또한 내부 구조가 견고해서 화포공격에도 끄떡없었다고 합니다. 이러한 거북선 덕분에 일본군은 큰 피해를 입고 물러나게 되었습니다.

     

    충무공은 어떻게 유명해졌나

    조선 시대 최고의 명장이자 성웅으로 추앙받는 이순신 장군은 어릴 때부터 남다른 재능을 보였습니다. 특히 활쏘기 솜씨가 뛰어났죠. 이러한 모습을 본 마을 사람들 모두 감탄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이순신 장군은 다른 사람들 앞에서는 절대 활솜씨를 보여주지 않았어요. 만약 자랑이라도 했다가는 부모님께 꾸중을 들을 게 뻔했기 때문이죠. 대신 책을 읽고 글을 쓰는데 열중했습니다. 그렇게 열심히 노력한 결과, 마친 내 스물두 살이라는 나이에 무과에 합격하게 되었습니다.

     

    거북선은 누가 발명했나

    태종때 이미 개발되었습니다. 하지만 제대로 활용되지 못하다가 임진왜란 때 작전에 등장하게 됩니다. 임진왜란 당시 활약했던 거북선은 세계 최초의 철갑선입니다. 원래 군사용으로 개발되었지만, 나중에는 돌격용 군함으로 활용되었죠. 판옥선 위에 덮개를 씌운 형태였는데, 갑판 위에는 쇠못을 박아 만든 방패를 설치했죠. 또한 선체 내부에는 대포를 설치했으며, 좌우 측면으로는 화포 구멍을 뚫어 총탄 공격까지도 막아낼 수 있도록 설계되었습니다. 뿐만 아니라 천자총통 등 여러 종류의 포를 장착함으로써 화력면에서도 우수성을 갖추었죠. 덕분에 많은 수의 적군을 쉽게 물리칠 수 있었습니다. 현재 남아있는 거북선은 1795년 정조시대에 만들어진 모형입니다.

     

    학익진은 어떤 전술인가

    학인진은 원래 중국 명나라 장수 진린의 함대가 펼친 전술이었는데 이를 이순신 장군이 응용하였습니다. 학익진은 말 그대로 학이 날개를 편듯한 형태로 배치되어 싸우는 방법입니다. 대형은 사방에서 포를 쏠 수 있어서 매우 효율적이고 강력합니다.

     

    명량대첩은 언제 일어났나

    1597년 9월 16일 음력 오전 11시쯤 벌어졌습니다. 그날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서 물살이 빠른 날이었다고 합니다. 그래서 더욱더 극적은 승리였다고 알려져 있습니다.

     

    우리나라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라 불리는 이순신장군처럼 뛰어난 리더가 있다면 지금보다는 좀 더 살기 좋은 세상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그런 의미에서 이번주말엔 영화 <명량>한 편 보는 건 어떨까요?